기계가 일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AI가 만드는 풍요와 노동 이후의 소득
Oct 18, 2026 · @Joo-Ho LEE
인간의 노동을 덜 필요로 하는 기술을 만들었다면, 그 성과를 누리기 위해 반드시 많이 일해야 하는 사회제도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1. 물건은 넘치는데, 살 사람이 없다면
어느 도시에 가상의 공장이 하나 있다고 하자. 지난해까지 이 공장에서는 열 명이 하루 1,000개의 부품을 만들었다. 올해 AI가 생산 일정을 짜고, 로봇 팔이 조립과 검사를 맡게 되었다. 이제 두 명이 모니터를 지켜보며 하루 1,500개를 만든다. 불량률은 줄었고, 부품 하나를 만드는 비용은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경영진에게도, 주주에게도, 장부의 숫자로 보면 더할 나위 없는 성공이다.
이제 카메라를 조금 뒤로 빼 보자. 같은 거리의 다른 공장에서도, 옆 도시의 물류센터와 콜센터와 회계 사무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일터를 떠난 사람들은 어제까지 그곳에서 만든 물건과 서비스를 사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새 일자리나 다른 소득이 그 빈자리를 채워 주지 못한다면, 더 싸고 품질은 오히려 더 좋지만 그 물건을 살 돈은 어디에서 나올까.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기업가들도 마주해 왔다. 1914년 포드 자동차는 조건부 이익분배를 포함해 하루 5달러를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 일당 2.34달러의 두 배가 넘는 액수였다. 흔히 '노동자가 자기가 만든 차를 살 수 있게 하려고'라는 설명이 따라붙지만, 더 직접적인 배경은 높은 이직률이었다. 단조로운 조립 라인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임금 인상은 생산성을 높이고 소비도 늘릴 수 있다. 다만 한 기업이 더 준 임금이 고스란히 그 기업의 매출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직원들은 다른 기업의 물건도 산다. 구매력은 어느 한 기업을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두 종류의 풍요를 구별해야 한다. 하나는 생산의 풍요다. 더 적은 사람과 시간으로 더 많은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다른 하나는 생활의 풍요다. 보통 사람이 그 결과물을 실제로 누리며 불안 없이 사는 상태다. 지금까지 우리는 앞의 것이 늘어나면 뒤의 것도 따라 늘어날 거라고 믿어 왔다. AI는 그 믿음을 다시, 더 큰 규모로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2.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도 잘살게 될까
스탠퍼드대의 경제학자 찰스 존스는 성장 연구에서 놀라운 규칙성 하나를 보여 주었다. 미국의 1인당 GDP는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약 150년 동안, 큰 경기 변동에도 불구하고 장기 추세로 보면 연평균 약 2% 성장했다. 연 2%는 작아 보이지만, 약 35년마다 소득이 두 배가 되는 속도다. 증조부 세대와 비교하면 우리는 여러 배 부유한 세상에 산다.
존스는 성장의 원동력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강조한다. 그런데 인구 증가가 느려지고 연구 인력의 확대에도 한계가 생기면, 지금의 성장세가 계속되리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서 AI가 등장한다. AI가 연구와 발견의 일부를 맡는다면 그 제약을 완화하고 성장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경제학자들이 AI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GDP의 성장은 '파이의 크기'에 대한 이야기이지, '누가 얼마를 먹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평균은 모두를 대표하지 않는다. 억만장자 한 명이 동네 식당에 들어오면 그 식당 손님들의 평균 재산은 순식간에 수억 달러가 되지만, 아무도 더 부유해지지 않았다.
실제 자료도 이 간극을 보여 준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1979~2019년 미국의 순 노동생산성은 59.7% 늘었지만 중위 노동자의 실질 시간당 보상은 15.8% 늘었다. 보상에는 임금뿐 아니라 복리후생도 포함된다. 어떤 노동자와 물가지수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격차의 크기는 달라진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이 보통 노동자의 보상으로 얼마나 이어지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루카스 카라바부니스와 브렌트 나이먼의 연구도 1975~2012년 세계 기업 부문에서 노동소득분배율이 약 5%포인트 하락했다고 보고했다.
노동에 돌아가는 비중이 줄면 자본에 돌아가는 비중은 커진다. 문제는 기계와 소프트웨어와 기업 지분의 소유가 몹시 치우쳐 있다는 데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분배 금융계정에서도 가계가 보유한 주식과 뮤추얼펀드의 대부분은 자산 상위 10%에 집중되어 있고, 하위 50%의 몫은 극히 작다.
AI와 로봇도 이런 자본의 일부다. 공장의 열 명이 두 명이 된다고 해서 줄어든 여덟 명의 임금이 모두 이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계의 구입·운영 비용이 들고, 경쟁이 치열하면 절감한 비용이 가격 인하로 소비자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그래도 자동화의 이익이 소유자에게 집중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소득을 보완할 길이 부족하다면 경제 전체는 부유해지면서도 많은 사람의 생활은 불안해질 수 있다. 성장만으로 분배의 문제까지 해결되지는 않는다.
3. 이번에도 새로운 일자리가 해결해 줄까
기술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두려움은 새롭지 않다. 1811년부터 몇 년 동안 영국 여러 지역의 섬유 노동자들이 직물 생산 기계를 파괴했다. 이른바 러다이트 운동이다. 그러나 그 뒤 200년 동안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늘었다.
농업이 가장 극적인 예다. 한때 미국의 대표적인 일터였던 농장에서 이제는 소수의 노동자가 훨씬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 농장을 떠난 사람들의 후손은 공장과 사무실과 병원과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일한다. MIT의 데이비드 오터 연구팀에 따르면, 2018년 미국 고용의 약 60%는 1940년 이후 직업 분류에 새로 등장한 업무 유형에 속했다. 넓은 의미의 직업 60%가 통째로 새로 생겼다는 뜻은 아니지만, 기술이 기존 일을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일을 만들어 왔음을 보여 준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럴까. 그럴 수 있다. 다만 AI가 바꿀 수 있는 일의 범위는 넓다. 트랙터와 직기가 주로 특정한 작업을 대신했다면, AI는 글쓰기와 분석, 설계와 학습까지 여러 영역에 걸쳐 쓰인다. 새로운 일이 생겨도 그 일부를 AI가 곧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이 옮겨 갈 다음 일터가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생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AI가 사람을 돕는 효과도 이미 관찰된다. 고객 상담원 5,172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AI 도우미를 쓴 상담원의 생산성이 평균 15% 높아졌고, 경험이나 숙련이 부족한 집단의 개선 폭은 약 30%에 이르렀다. 그러나 생산성 상승이 곧 고용 감소라는 뜻은 아니다. 가격이 내려가고 수요가 늘면 고용이 유지되거나 늘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더 적은 노동으로 같은 일을 해낼 수 있게 될 때, 늘어난 여유가 누구에게 어떤 형태로 돌아가느냐다.
변화는 화면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파스쿠알 레스트레포는 1990~2007년 미국의 산업용 로봇 도입을 연구했다. 미국 전체로 환산한 추정에서는 노동자 1,000명당 로봇 한 대의 증가가 고용인구비율 약 0.2%포인트 하락, 임금 약 0.42% 감소와 연결되었다. 특정 시기의 산업용 로봇에 관한 결과이지, 앞으로의 AI가 만들 영향을 그대로 예측한 수치는 아니다. 과거에도 센서와 시각 기능을 갖춘 로봇은 있었다. 이제는 AI의 발전으로 로봇이 더 다양한 환경에서 작업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무실과 현장에서 변화가 함께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역사 속에서 기술에 밀려난 존재가 사람만은 아니었다. 자동차와 트랙터가 퍼지자 운송과 농사에 쓰이던 말의 수는 급격히 줄었다. 말에게는 충분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지 않았다. 사람이 말처럼 될 거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배우고, 조직하고, 제도를 바꿀 수 있다. 다만 새로운 일자리가 충분히, 제때, 모두에게 생겨날 것이라는 가정 위에 우리의 생계를 계속 걸어 두어도 괜찮은가. 고용이 불확실해지는 시대에도 소득을 주로 고용에 의존하는 구조가 최선인가.
4. 덜 일하면서 더 잘살면 안 되는가
잠시 질문을 뒤집어 보자. 우리는 왜 기계를 만들었는가. 무거운 것을 대신 들고, 위험한 곳에 대신 들어가고, 지루한 계산을 대신 하라고 만들었다. 기술 발전의 목적이 인간의 짐을 덜어 주는 것이었다면, 사람이 덜 일해도 되는 세상은 실패가 아니라 목표의 달성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소식을 들으면 기뻐하기보다 두려워할까.
두려운 것은 노동의 감소가 아니다. 노동이 줄어들 때 생활의 기반까지 함께 사라지는 구조가 두려운 것이다. 일자리를 잃으면 소득과 사회적 소속감이 흔들린다. 미국처럼 직장 건강보험에 크게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의료 보장까지 불안해질 수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기계가 일을 덜어 주는 것이 축복보다 위협으로 다가온다. 문제는 기술과 우리의 생계를 이어 붙인 방식에 있다.
사실 인류는 이미 이 길을 걸어왔다. 산업화 초기의 긴 노동일과 주 6일 근무는 여러 나라에서 점차 짧아졌다. 1926년 포드 자동차는 주 5일,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했고, 미국에서는 1940년 연방법상 초과근무수당의 기준이 주 40시간으로 내려갔다. 40시간 넘게 일하는 것을 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노동시간의 사회적 기준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주말'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생산성이 오른 만큼 시간을 돌려받으려는 노력과 제도 변화가 쌓인 결과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00년 뒤 생활수준이 크게 높아져, 사람들이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될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2030년을 몇 년 앞둔 지금, 풍요에 대한 전망과 노동시간에 대한 전망은 다른 길을 걸었다. 생활수준은 크게 높아졌고 노동시간도 줄었지만, 주 15시간 노동은 보편적인 현실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생산성 향상의 성과를 소비와 여가로 바꾸어 왔지만, 그 비율도 그 혜택을 누리는 정도도 모두 같지는 않았다.
이제 다른 그림을 그려 보자. 일주일에 서너 날만 일하고도 집세와 식비와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는 사회. 남는 시간에 아이를 키우고 늙은 부모를 돌보는 일이 '경력 단절'이 아니라 당연한 삶의 일부가 되는 사회. 마흔이 넘어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쉰에 처음 악기를 잡고, 이웃과 함께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쓰는 사회. 지친 몸을 충분히 쉬게 하는 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건강한 시민의 권리인 사회.
돌봄, 배움, 창작, 휴식. 돈을 주고받는 서비스는 GDP에 잡히지만, 집에서 가족을 돌보고 혼자 배우고 쉬는 시간의 가치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런 활동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기계가 대신 일하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남는 가장 귀한 자원은 아마 시간일 것이다. 풍요란 더 많이 가지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5.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그 풍요를 나눌까
어릴 때 우리가 그리던 미래를 떠올려 보자. 로봇이 밥을 짓고 청소를 하고 공장을 돌리는 동안, 사람은 놀고 배우고 쉬면서 풍요롭게 산다. 만화와 공상과학 잡지 속 미래는 늘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꿈에는 한 가지 질문이 빠져 있었다. 그 로봇은 누구의 것인가. 로봇이 대신 일해 준 몫이 저절로 내 몫이 되리라고, 어린 우리는 의심해 본 적이 없다.
현실의 로봇과 AI는 대부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소유하거나 운영한다. 기업이 기계를 들이는 주된 이유는 사람을 쉬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늘리려는 것이다. 비난할 일이 아니라 기업의 작동 방식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계가 대신 일한다고 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저절로 모두에게 생기지는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 변화가 일자리를 잃는 불안으로 먼저 찾아온다.
첫 장면의 공장으로 돌아가 보자. 경쟁 회사가 자동화로 비용을 낮추는데 혼자만 기존 방식을 고수하기는 어렵다. 개별 기업에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여러 기업이 동시에 고용을 줄이고, 가격 하락이나 새 일자리·투자·소득 이전이 구매력 감소를 충분히 메우지 못한다면 시장 전체의 수요가 약해질 수 있다. 개별 기업의 성공이 사회 전체의 안정으로 곧장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이 간극을 기업의 선의만으로 메우기는 어렵다. 개별 기업을 넘어서는 규칙이 필요하다. 정답은 아직 없지만, 지금까지의 논의와 실험에서는 크게 세 갈래의 가능성이 보인다.
첫째, 세금과 공공서비스로 나누기
AI와 자동화가 만든 이윤의 일부를 세금으로 거두어,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거나 의료·교육·주거·돌봄 같은 기본 서비스를 공공이 보장하는 방식이다.
현금 지급 실험은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보여 준다. 미국 오픈리서치의 3년 실험에서는 저소득층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를 지급했다. 2026년 8월 개정 연구에 따르면, 수급자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대조군보다 4.2%포인트 낮았고 노동시간은 주당 약 1~2시간 줄었다. 현금이 생활의 선택지를 넓히는 동시에 노동 공급을 줄일 수도 있다는 결과다. 다만 한시적으로 특정 집단에 지급한 실험만으로, 전국민에게 영구적으로 세금을 걷어 지급할 제도의 효과까지 알 수는 없다.
둘째, 시민이 생산자산의 주인이 되어 배당받기
세금으로 나중에 나누는 대신, 처음부터 시민 모두가 기계와 기업의 공동 소유자가 되는 방식이다. 노동으로 버는 소득이 줄어든다면, 자본으로 버는 소득을 넓게 나누자는 생각이다.
실제 사례는 알래스카에 있다. 석유 수입의 일부를 영구기금에 쌓아 투자하고, 1982년부터 자격 요건을 충족한 주민에게 해마다 배당을 지급해 왔다. 이 제도를 연구한 데이먼 존스와 이오아나 마리네스쿠는 전체 고용의 유의한 감소를 발견하지 못했고, 시간제 고용은 늘었다고 보고했다. 그렇다고 이 규모의 배당이 생활비 전부를 대신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공동 자산의 수익을 시민과 나누는 제도가 이미 존재한다는 점이다. AI 시대에도 생산자산의 소유와 수익을 넓게 나눌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 생산성 향상을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누기
오른 생산성을 돈이 아니라 시간으로 돌려받는 방식이다. 같은 월급을 받으며 더 적게 일하는 것이다.
2022년 영국에서는 61개 기업, 약 2,900명이 주 4일 근무 시범 사업에 참여했다. 6개월 뒤 56개 기업이 이를 이어 가기로 했고, 그중 18개 기업은 영구 도입을 결정했다. 직원들의 소진은 줄었고, 매출 자료를 제공한 23개 기업의 매출은 대체로 유지되었다. 다만 자발적으로 참여한 기업들의 실험이므로 모든 업종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시간을 나누는 방식도 업종과 업무 설계에 맞추어 검증해야 한다.
쉬운 길은 없다
세 가지 모두 어려움이 있다. 혁신의 동기를 살리면서 재원을 마련해야 하고, 자본이 국경을 넘어 움직이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모든 성인에게 매달 1,000달러를 지급한다면 총지급액만 연간 약 3조 달러 규모다. 실제 순재정부담은 세금으로 회수하는 금액과 기존 제도 조정에 따라 달라지지만, 작은 선택은 아니다.
또한 공공기금의 투자와 배분을 누가 결정하고 감시할지도 중요하다. 기업에 집중된 권력을 국가에 그대로 옮겨 놓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얼마나, 누구와 나눌지는 결국 정치와 제도의 문제다. 이런 어려움은 포기할 이유보다 신중하게 설계할 이유에 가깝다. 어느 하나의 정답을 고르기보다 세 가지를 각 사회의 조건에 맞게 조합하는 편이 현실적일 것이다.

6.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가 아니라, 새로운 조합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곧바로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그건 결국 공산주의 아닌가?" 그 질문에는 20세기의 기억이 짙게 배어 있다. 시장과 계획, 사유와 국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우리는 세상을 두 칸짜리 상자로 나누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는 그렇게 깔끔하게 나뉜 적이 한 번도 없다.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주 가운데 하나지만, 40년 넘게 자격을 갖춘 주민에게 공동 자산의 배당을 나눠 주고 있다. 노르웨이는 시장경제 국가이면서 동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의 주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은 시장과 경쟁 위에 공공 의료와 연금과 실업보험을 얹은 '혼합경제'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두 상자 사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어느 체제가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시장과 경쟁의 활력은 지키면서도, 사람의 생존을 임금 하나에만 매달아 두지 않는 사회가 가능한가. 이것은 어느 한 이념의 승리 선언이 아니다. 생산의 방식이 바뀌었으니, 소유와 분배의 규칙도 그에 맞게 다시 짤 수 있다는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다.
돌아보면 인류는 생산 방식이 바뀔 때마다 그 규칙을 다시 짰다. 땅이 부의 원천이던 시대에는 토지를 누가 가지느냐가 사회의 모습을 결정했다. 공장이 부의 원천이 되자 노동법과 노동조합, 주 40시간제와 사회보험이 생겨났다. 어느 것도 처음부터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그 과정에는 거센 논쟁과 저항이 있었다. 이제 AI와 로봇이 새로운 부의 원천이 되어 가고 있다. 그에 맞는 규칙이 무엇일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다만 그것을 찾는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기계가 인간의 일을 얼마나 빼앗을 것인가만이 아니다. 기계가 대신 일해서 만들어 낸 풍요를, 인간이 어떻게 함께 누릴 것인가이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동료 경제학과 교수의 글 「AI와 경제성장의 미래는 과연 장밋빛일까?」을 읽고, 그 글이 던진 질문을 붙들고 내 생각을 정리해 본 것이다. 내 글은 그 글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출발점이 된 것은 분명 그 글이었다. 훌륭한 화두를 던져 준 동료 교수에게 감사를 전한다.
자료와 참고 링크
Jones · 성장과 AI · EPI · 생산성과 보상 · 노동소득분배율 연구 · MIT · 새로운 업무 · Generative AI at Work · Robots and Jobs · OpenResearch · 현금 지급 실험 · 알래스카 배당 연구 · Cambridge · 주 4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