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책을 덮는 날
AI 시대, 책은 어디로 가는가
2026년 10월 19일 · Joo-Ho Lee
프롤로그: 서른두 권의 마지막
1768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첫 회분이 나왔다. 그 뒤 240여 년 동안 이 이름은 '세상의 모든 지식'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다. 거실 책장에 금박 글씨가 박힌 브리태니커 전집을 들여놓는 것은 한 집안이 지식을 존중한다는 표시였다.
2012년 3월, 브리태니커는 종이 백과사전 전집의 발행을 끝내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판, 서른두 권짜리 전집이 마지막 인쇄판이 되었다. 무게만 60킬로그램 가까이 되던 지식의 성채가 책장에서 화면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위키백과가 문을 연 지 11년 만의 일이었다.
브리태니커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편집과 집필은 온라인에서 계속되었다. 오히려 이것은 지식이 종이를 떠나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례이기도 하다. 그때 사람들은 사전과 백과사전은 원래 '찾아보는 책'이니 검색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소설과 교과서와 학술서는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 경계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책은 종이로 묶인 물건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오래 생각해 글로 남기고, 다른 사람이 그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 보는 형식이다. 전자책으로 읽어도, 화면에 긴 글을 써도 그 일은 계속될 수 있다.
그런데 지식을 얻는 일이 점점 편해지는 동안, 지식을 만들어 남기는 사람과 그것을 깊이 읽는 사람이 함께 줄어든다면 어떻게 될까. 이 글은 그런 미래를 미리 그려 보려는 시도다. 정해진 결말은 아니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지기 전에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1. 나만을 위한 교과서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대학 신입생을 상상해 보자. 그는 열역학 수업을 듣는다. 하지만 두꺼운 교재를 사지 않는다. 대신 AI에게 묻는다. "고립계의 엔트로피는 왜 줄어들지 않는지, 고등학교 확률까지만 아는 나한테 맞춰서 설명해 줘." AI는 그가 지난주에 헷갈려했던 개념을 기억하고, 그가 좋아하는 축구 이야기로 예를 들고, 그가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문제를 낸다. 틀리면 다른 각도에서 다시 설명한다. 밤 두 시에도, 같은 질문을 열 번 해도 지치지 않는다.
이것은 오래된 교육학의 꿈이기도 하다. 1984년 교육심리학자 벤저민 블룸은 일대일 개인 지도의 효과를 보여 주는 연구를 소개했다. 그 연구에서 개인 지도를 받은 평균적인 학생의 성취도는 일반 교실 학생들의 약 98%보다 높았다. 물론 모든 상황에서 같은 효과가 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에게 맞추어 가르칠 때 생기는 차이였다. 모든 학생에게 개인 교사를 붙일 수 없다는 오래된 제약 속에서, 교과서는 한 전문가의 지식을 수천, 수만 명에게 전하는 역할을 해 왔다.
교과서는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지만, 한 권의 책이 모든 독자에게 맞을 수는 없다. 이미 아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고, 아직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렵다. 빠르게 변하는 분야에서는 개정판을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연구가 쌓인다. 잘 설계된 AI 튜터는 독자에게 설명을 맞추고, 최신 자료를 찾아 연결해 주면서 이런 한계를 줄일 수 있다. 다만 자료가 최신이라고 해서 설명까지 정확한 것은 아니다. 무엇을 골라 어떻게 가르칠지는 여전히 검증해야 한다.
이미 흥미로운 실험도 나왔다. 2023년 가을 하버드대 물리학 수업에서 진행되어 2025년 발표된 연구에서는, 교육 원리를 반영해 설계한 AI 튜터로 공부한 학생들이 같은 내용을 능동적 학습 교실에서 배운 학생들보다 더 짧은 시간에 더 큰 학습 성과를 보였다. 세계은행이 2024년 나이지리아에서 진행한 방과후 프로그램에서도 AI 튜터와 교사의 지도를 함께 받은 학생들의 영어 실력이 6주 만에 뚜렷이 향상되었다. 교과서나 교사가 필요 없어졌다는 증거는 아니지만, 학생이 배우는 경로가 달라질 가능성은 보여 준다.
그렇다면 전공서는 어떻게 될까. 처음에는 AI가 교과서를 '읽고' 설명해 주는 보조 도구로 쓰일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곧 교과서를 건너뛰고 AI에게 바로 묻게 될지도 모른다. 전문가에게도 몇 년을 들여 책을 쓰기보다 논문과 강의 자료를 남기고, 설명은 AI에게 맡기는 편이 편해질 수 있다. 전공서 가운데 일부는 개정판을 멈출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는 질문에 답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무엇을 먼저 배우고 무엇을 나중에 배울지 정하고, 아직 질문할 줄 모르는 문제까지 독자 앞에 놓는다. 내가 이미 궁금해하는 것에만 답을 얻는 공부가 이 역할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사라질지 모르는 것은 책 한 권이 아니라, 한 분야를 처음부터 끝까지 엮어 보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2. 논문의 홍수, 그리고 가뭄
지금 학계는 홍수 속에 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집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약 330만 편의 과학·공학 논문이 발표되었다. 하루에 9,000편이 넘는다. 어떤 연구자도 넓어지는 자기 분야의 논문을 모두 읽기는 어렵다.
내가 몸담고 있는 로봇 분야에서도 이런 변화가 뚜렷하다. 대표적인 학술회의인 ICRA에는 2026년 5,088편의 논문이 투고되었다. 내가 준비에 관여하고 있는 ICRA 2027에는 8,000편이 넘는 논문이 들어왔다. 전년도 공식 발표와 내가 파악한 올해 수치를 비교하면, 한 해 사이 약 57% 이상 늘어난 셈이다. 나는 이 급증에 최근 AI 성능의 향상도 큰 몫을 했으리라 추측한다. AI 자체가 새로운 연구 주제를 만들어 내는 데다, 구현과 분석, 논문 작성에 드는 부담도 덜어 주기 때문이다. 물론 투고 수만으로 AI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가려낼 수는 없다.
AI가 학술 글쓰기에 널리 쓰인다는 흔적도 보인다. 독일 튀빙겐대의 드미트리 코박 연구팀은 의학 데이터베이스 펍메드(PubMed)에 실린 초록의 어휘 변화를 분석했다. 연구팀은 2024년 초록 가운데 적어도 13.5%, 대략 일곱 편 중 한 편은 대규모 언어 모델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delve(파고들다)' 같은 특정 단어의 사용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 단서였다. 이것은 글쓰기 보조의 흔적이지, 그 연구가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글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 성실한 연구의 전달뿐 아니라 부실한 원고의 생산도 쉬워진다. 연구자는 더 많은 논문을 읽어야 하고, 심사자는 더 많은 주장 가운데 믿을 만한 것을 골라야 한다. 생산의 속도에 검증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 홍수는 언젠가 다른 모습을 띨 수도 있다. 작은 실험 결과나 반복적인 분석은 긴 논문 대신 데이터베이스와 코드, 짧은 연구 기록으로 공유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지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록의 형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논문 역시 결과를 알리는 편지이면서, 어떤 방법을 썼고 누가 그 주장에 책임을 지는지 남기는 장치다. 그 역할까지 불필요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가뭄은 논문 수가 줄어드는 데서 오지 않는다. 결과를 정리하는 일이 쉬워질수록, 오랜 시간이 걸리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질문은 상대적으로 밀려날 수 있다. 더 많은 원고가 나오는 동안에도, 정작 새로운 문제를 오래 붙들고 씨름하는 연구는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홍수 속에서도 그런 가뭄은 올 수 있다.
3. 해 보기 전에 답을 아는 세계
1928년,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키우던 배양 접시에서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다.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그 주변에서 세균이 자라지 않고 있었다. 페니실린 발견의 출발점이었다. 과학의 역사에는 이런 장면이 적지 않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 실패한 실험, 엉뚱한 곳에서 튀어나온 이상한 숫자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었다. 우연도 중요했지만, 이상한 것을 그냥 버리지 않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이제 과학에서는 실제로 해 보기 전에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알파폴드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입체 구조를 예측하는 능력을 크게 높였고, 이후 약 2억 개의 단백질 구조 예측이 공개되었다. 2023년 구글 딥마인드의 GNoME는 220만 개의 새로운 결정 구조를 예측하고, 그중 약 38만 개를 계산상 안정적인 후보로 제시했다. 같은 해 미국 로런스버클리 국립연구소의 자율 실험실 'A-Lab'은 로봇이 재료를 섞고 굽고 분석해 17일 동안 41개의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했다고 발표했다. 새로움과 분석의 타당성을 둘러싼 반론도 나왔지만, AI와 로봇이 실제 실험을 수행하고 그 결과로 다음 시도를 바꾸는 방향은 주목할 만하다.
이런 도구는 사람이 다 살펴보지 못했던 가능성을 빠르게 탐색하게 한다. 낮은 가지에 달린 열매를 거두는 속도가 빨라지는 셈이다. 여기서 곧바로 열매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의 발견이 전에 보이지 않던 가지를 드러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성과를 얻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진다는 징후는 AI 이전부터 있었다. 스탠퍼드대의 니컬러스 블룸과 동료들은 반도체 칩의 집적도를 2년마다 두 배로 늘리는 데 필요한 연구 인력이 1970년대 초보다 18배 이상 많아졌다는 분석을 2020년 발표했다. 2023년 『네이처』에 실린 마이클 박과 동료들의 연구도 논문과 특허의 인용 관계를 분석해, 기존 연구의 흐름을 바꾸는 성격의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다고 보고했다. 다만 그런 연구의 절대 수는 대체로 유지되었다. 큰 발견이 사라진다는 증거라기보다, 늘어난 연구량이 그만큼의 전환으로 이어지는지를 묻는 결과에 가깝다.
AI가 이 흐름을 어떻게 바꿀지는 아직 모른다. 시뮬레이션은 넣어 준 법칙과 가정의 한계를 갖지만, 실제 실험은 그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를 줄 수 있다. AI가 더 많은 실험을 가능하게 하면 뜻밖의 발견도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도구의 한계보다 그 도구를 쓰는 우리의 습관이다. 예측이 잘되는 문제만 고르고, 예상과 다른 결과를 잡음으로 치부하고, 계산이 어렵다는 이유로 어떤 질문을 접어 버리지는 않을까. 쉬운 성과를 빨리 내는 방식에 연구의 평가와 보상까지 맞추어지면, 높은 가지에 닿으려는 긴 시도는 설 자리를 잃기 쉽다. 예측 능력이 좋아질수록, 예측 밖을 살펴보는 일의 가치를 더 의식적으로 지켜야 하는 이유다.

4. 작가가 되기 어려운 시대
2023년 2월 20일, 미국의 공상과학 잡지 『클라크스월드』는 원고 접수를 중단했다. 그달 들어 사람이 쓴 것으로 본 투고작이 약 700편이었는데, 기계가 쓴 것으로 판단한 원고가 500편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잡지의 마스코트는 로봇이다. 잡지는 대응 방식을 손본 뒤 3월 12일 접수를 재개했다. 문학의 문이 영영 닫힌 사건은 아니지만, 그 문을 열어 두는 데 드는 일이 갑자기 얼마나 늘어날 수 있는지는 보여 주었다.
문제는 AI가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느냐에만 있지 않다. 읽고 고를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은 원고가 쏟아지면, 편집자의 시간과 독자의 주의가 먼저 부족해진다. 그럴 때 사람들은 이미 아는 이름을 찾기 쉽다. 유명 작가의 이름은 수많은 글 가운데 무엇을 읽을지 고르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모든 유명 작가도 한때는 무명이었다. 그들은 잡지에 단편을 투고하고, 공모전에 응모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첫 책을 내며 이름을 쌓았다. 그 입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원고로 막히면, 편집자는 새로운 목소리를 찾아낼 여력을 잃는다. 새로운 유통 경로가 열릴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쉽게 글을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누구나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독자를 만나도 생계는 또 다른 문제다. 영국 작가저작권협회(ALCS)가 의뢰한 2022년 조사에서, 집필을 주업으로 하는 작가들이 글을 써서 번 연소득 중앙값은 약 7,000파운드였다. 전체 소득이 아니라 글을 써서 얻은 소득이다. 물가를 감안하면 2006년 조사보다 약 60% 줄었다. 작가로 먹고살기는 AI 이전에도 이미 어려웠다. 여기에 낮은 비용으로 대량 생산되는 글이 더해지면, 적어도 일부 영역에서는 사람이 쓰는 글의 값이 더 눌릴 수 있다.
사람이 쓴 글을 찾는 독자는 남을 것이다. 인간의 경험과 시선이 담겼다는 이유로 오히려 더 귀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 다음 세대의 작가가 오래 쓸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미 이름을 얻은 작가의 책만 팔리고, 첫 책을 쓰는 사람은 버티지 못하는 문학이라면, 겉으로는 풍성해 보여도 안쪽에서는 서서히 메말라 갈 수 있다.
5. 책을 읽지 않는 세대
2025년 미국 플로리다대와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연구진은 23만 6,000명이 넘는 미국인의 자료가 담긴 '미국인 시간 사용 조사'를 분석했다. 하루 중 재미로 무언가를 읽는 사람의 비율은 2004년 약 28%에서 2023년 약 16%로 떨어졌다. 약 40% 줄어든 것이다. 이 조사의 여가 독서는 종이책만이 아니라 전자책과 오디오북 등도 포함한다.
그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연구진은 원인을 단정하지 않았다. 디지털 미디어의 성장뿐 아니라 경제적 압박, 여가 시간의 감소, 책과 도서관에 대한 접근 차이도 가능한 설명으로 꼽았다. 다만 짧은 영상과 요약이 책을 읽을 시간과 경쟁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느낄 수 있다. 15초짜리 영상은 한 페이지를 읽는 것보다 빠르게 웃음과 놀라움을 준다. 3분짜리 요약 영상은 300쪽짜리 책의 줄거리를 알려 준다.
줄거리를 아는 것과 책 한 권을 따라가는 경험은 같지 않다. 앞의 문장을 기억하면서 다음 문장을 읽고, 당장 이해되지 않는 대목을 붙잡고, 마음에 들지 않는 주장도 끝까지 들어 보는 시간이 책 속에는 있다. 그런 시간을 덜 쓰게 되면 긴 글이 점점 더 힘들고 낯선 일이 될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책을 읽으라고 말하는 것만큼, 읽을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 주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조언을 얻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에서 지식뿐 아니라 '지금 나에게 필요한 말'을 찾는다. 그런데 이제 나의 상황을 묻고, 나의 사정을 듣고, 나에게 맞춘 듯한 조언을 건네는 AI가 있다. 2025년 온라인 이용 사례를 분석한 한 보고서도 상담과 정서적 지지를 주요 용도로 꼽았다. 전체 사용자의 이용 빈도를 대표하는 조사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AI를 단순한 검색창 이상으로 대하고 있다는 장면은 보여 준다.
수많은 독자를 향해 쓰인 책보다 나 한 사람에게 답하는 AI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바로 그 점이 매력이면서 걱정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할 만한 설명만 받다 보면, 낯선 생각을 만나고 그것을 견디며 읽는 경험은 줄어들지 않을까.
책이 당장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AI가 지금보다 훨씬 똑똑해지고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세상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긴 글을 읽는 일은 지금과 다른 자리를 차지할지 모른다. 책은 남아 있어도, 책을 통해 생각을 키우는 습관은 일부의 취향으로 좁아질 수 있다.
6. 배울 것이 없는 AI
여기까지 오면 이런 반론이 나올 수 있다. 사람이 책을 덜 읽고 덜 쓰면 어떤가. AI가 대신 지식을 정리하고 새로운 발견까지 해 주면 되지 않는가. 충분히 가능한 반론이다. 다만 지금의 AI가 무엇을 바탕으로 자랐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책과 논문, 신문과 인터넷 게시판에 남긴 사람들의 기록이 그 중요한 토대였다.
프로그래머들이 서로 묻고 답하던 스택오버플로는 그 토대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 준다. 공개 질문과 답변이 쌓인 이곳은 AI가 코딩을 배우는 자료로도 쓰였다. 한 분석에 따르면 ChatGPT가 나온 2022년 11월 약 10만 8,000건이던 월간 새 질문 수는 2년 뒤 약 4분의 1로 줄었다. 감소는 그전부터 시작되었으므로 모두 AI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공개된 곳에서 하던 질문이 AI와의 사적인 대화로 옮겨 가면, 다른 사람이 찾아 읽을 기록이 덜 쌓일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해 볼 만하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는 공식 문서와 코드, 실행 결과로도 배울 수 있다. 질문 사이트 하나의 쇠퇴가 곧 AI의 학습 중단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가 어디서 막혔고 어떤 설명으로 이해했는지 남기는 기록은 공식 문서와 다른 가치를 갖는다. 그런 다양한 경험이 공개된 지식으로 돌아오는 길이 좁아질 수 있다.
AI가 만든 글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데도 주의가 필요하다. 2024년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모델이 만든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다음 세대의 학습에 되먹이는 과정에서, 드물고 독특한 내용이 사라지고 결과물의 질이 무너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를 '모델 붕괴'라고 불렀다. 모든 합성 데이터가 해롭다는 뜻은 아니다. 원래의 자료를 보존하고, 생성한 결과를 검증하며, 실제 관찰을 더하는 방식과는 구별해야 한다.
연구 기관 에포크AI는 2024년 연구에서 당시의 확대 추세가 이어지면 2026년에서 2032년 사이에 학습에 쓸 만한 공개 인간 텍스트를 거의 모두 활용하게 될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는 글이 없어지는 시점도, AI의 발전이 끝나는 시점도 아니다. 공개된 글을 더 많이 모으는 방식만으로 성능을 높이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험과 관찰, 검증된 합성 데이터 등 다른 배움의 길은 계속 열려 있다.
그럼에도 나는 사람이 남기는 기록의 다양성이 쉽게 대체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불편, 시대를 살아 본 사람의 감각, 효율과는 거리가 먼 호기심이 그런 기록에 담긴다. AI가 실험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알아내는 것과,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질문을 품는지 아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분서갱유라는 오래된 사건이 떠오른다. 『사기』에 따르면 진시황 때 민간의 여러 책을 불태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관의 박사들이 관리하는 책은 예외로 남겨졌다. 사건의 세부와 이후 지식의 손실을 둘러싸고는 논쟁이 있다. 그래도 누가 책을 갖고 읽을 수 있는지를 권력이 제한하려 했다는 장면은 오래 남는다.
오늘의 AI를 그 시대와 그대로 겹쳐 놓을 수는 없다. 여러 AI가 있고, 도서관과 인터넷의 기록도 남아 있다. 다만 지식을 만나는 길이 소수의 서비스로 좁아지고, 이용자들이 원문을 찾아 읽고 서로 기록을 남기는 일을 그만두는 상황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강제로 책을 빼앗기지 않아도, 편리함 때문에 스스로 읽고 쓰는 일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글에서 가장 말하고 싶은 역설이다. 사람이 AI에게 답을 구하는 일만 남기고 새로운 질문과 기록을 만들어 내는 일을 줄인다면, AI가 기대는 지식의 토대도 약해질 수 있다. 답을 얻기는 쉬워지는데, 다음 답을 낳을 질문은 오히려 드물어지는 것이다.

7. 정체의 풍경
기술의 발전이 모든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여객기는 수십 년 전보다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일 수 있지만, 순항 속도만 보면 크게 빨라지지 않았다. 속도 하나로 항공 기술 전체의 정체를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익숙한 발전의 한 방향이 오래 멈춰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이제 지식의 세계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모습을 그려 보자. AI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늘어나지만, 우리가 묻는 질문의 폭은 좁아지는 세계다.
그 세계는 겉보기에 아주 편안하다.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AI가 즉시 답해 준다. 병은 일찍 발견되고, 물건은 싸고, 화면에는 끝없이 재미있는 영상이 흐른다. 익숙한 문제를 푸는 솜씨는 날로 좋아진다.
그러나 오랫동안 붙들어야 하는 질문은 자꾸 뒤로 밀린다. 당장 쓸모를 설명할 수 없는 연구, 독자가 얼마나 될지 모르는 책,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의심하는 생각은 시간을 얻기 어렵다. AI가 그런 질문을 만들지 못해서만은 아니다. 누군가는 그 질문을 중요하다고 여기고, 실제로 확인하고, 결과를 비판하고, 다음 사람에게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긴 글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던 습관이 약해지고, 새롭게 써서 남기는 사람들이 버티기 어려워진다면 그 역할을 맡을 사람도 줄어들 수 있다. 답은 넘쳐 나는데, 답을 따져 보고 새로운 길을 고르는 힘은 약해지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위기로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루하루는 여전히 편안하고, 화면은 여전히 반짝이니까. 정체는 굉음과 함께 오지 않는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묻지 않게 되었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올 수 있다.

에필로그: 마지막 책을 덮기 전에
브리태니커가 마지막 인쇄판을 찍던 2010년, 그 서른두 권이 마지막이 될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은 대개 마지막인 줄 모르고 지나간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책 가운데 어떤 것도, 그 분야의 마지막 책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이 글에 그린 미래는 예언이 아니라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면서 글을 쓰는 이유는, 일어나기 전에 알아차리고 다른 길을 찾기 위해서다.
AI는 놀라운 도구다. 나만을 위한 설명을 만들어 주고, 수많은 실험을 도와주고, 밤 두 시에도 내 이야기를 들어 준다. 나는 그 도구를 거부하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도구를 둘러싼 지식의 세계도 돌보자는 것이다. 처음 질문을 던지는 사람, 실패한 실험을 다시 살펴보는 사람,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서 쓰는 사람, 그 글을 읽고 반박하는 사람이 계속 있어야 한다.
그러니 내일의 발전을 지키는 방법은 의외로 소박한 데서 시작할지 모른다. 긴 글을 끝까지 읽는 것. 서툴더라도 자기 생각을 써서 남기는 것. AI가 내놓은 답에 한 번 더 질문하는 것. 계산이 말하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가끔은 일부러 걸어 들어가 보는 것. 플레밍이 배양 접시를 그냥 버리지 않고 한 번 더 들여다본 것처럼. 그리고 그런 일을 오래 하는 사람이 버틸 수 있도록, 연구와 집필의 자리를 남겨 두는 것.
마지막 책을 덮는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일은, 오늘 한 페이지를 더 넘기는 데서 시작된다.
자료와 참고 링크
하버드 · AI 튜터 · ICRA 2026 · 투고 통계 · Kobak · 학술 글쓰기와 AI · Park 외 · 연구의 전환성 · ALCS · 작가 소득 · UCL · 독서 감소 · Stack Overflow · 질문 감소 · Nature · 모델 붕괴 · Epoch AI · 학습 데이터
ICRA 2027 수치는 필자가 준비 과정에서 파악한 현황이며, 공개된 ICRA 2026 통계와 구분했다.
